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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5·24 조치 이전 관행이던 대북송금에 벌금형 논란

“하다못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잡아 벌금을 물릴 때도 시행에 앞서 계도기간이라는 것을 갖습니다. 최소한의 법집행 절차를 지키는 것이 국가가 아닙니까. 남북경협 사업자들은 하루 아침에 벌금형을 받고, 범법자가 됐습니다.”(남북경협 관계자)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경협업체들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남북교류협력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대거 벌금형을 부과 받고, 일부는 이에 불복해 힘겹게 소송을 벌이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2010년 5월 24일 천안함 사태에 따른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 및 교역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부는 경협업체들에 파산선고나 다름없는 교역의 전면 중단 조치를 내린 데 이어, 무차별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경협업체들이 북한으로부터 반입하는 물품 등의 대금으로 보낸 대북송금 관련 서류를 샅샅이 뒤졌다. 경찰이 제3국을 통한 대북송금을 현행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보고, 증거 확보에 나선 것이다. 한 경협업체 대표는 “5·24조치 이후로 경협업체들이 경찰서 보안부서에 불려가서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경협업체들이 경찰에 불려가면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약식기소 형태로 벌금형을 부과했다.

남북경협 관련 전문가들이 6월 1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된 ‘5·24조치 2년, 남북경협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제공

한국은행 승인 받은 송금 문제된 적 없어

경협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여개의 업체가 북한에 현금을 송금한 혐의로 100만∼800만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으며, 대북송금 규모가 큰 업체의 경우 불구속 상태에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경협업체들은 이런 사법당국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초기(5·24조치 이전)까지 관행화됐던 대북송금 문제를 지금에 와서 사법당국이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당국은 대북송금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해석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법 13조 1항은 (북한에) 물품 등을 반출하거나 반입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물품 등의 품목, 거래 형태 및 대금결제 방법 등에 관하여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법은 대북송금과 관련해 애매한 규정을 담고 있다. 같은 법 13조 4항은 1항에 따라 반출이나 반입을 승인할 때는 물품 등의 품목, 거래 형태 및 대금결제 방법 등에 관한 일정한 범위를 정하여 포괄적으로 승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포괄승인 품목이란 통일부 고시에 따라 물품을 북한에 반출·반입할 때 건별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는 품목을 말한다. 물품의 반입·반출시 건별로 승인 받을 필요가 없으니, 업체들은 대금을 지급할 때도 통일부 장관의 승인 없이 그동안 송금을 해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한 번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협업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초까지 북한에 무역대금을 제3국을 통해 송금했다. 다만 업체들은 외국환관리법에 따라 한국은행의 승인을 받아 송금했다. 포괄승인 품목의 경우 통일부 장관 승인 없이 대북송금이 관행화됐었기 때문에 통일부도 이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사법당국은 경협업체들의 자금 흐름을 수사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포괄승인 품목을 반입한 대가로 제3국을 통해 대북송금을 한 것을 문제 삼아 남북교류협력법(13조 1항)과 통일부 고시(4조, 2008년 1월 제정)를 근거로 200여개 업체에 벌금형을 부과했다. 정부는 5·24조치 이전에는 모래, 농수산물 등 대부분의 남북경협 품목을 포괄적 승인품목으로 지정했으나, 5·24조치 이후에는 포괄승인 품목을 개별승인 품목으로 바꾸었다. 개별승인 품목이란 물품을 북한으로부터 반입 또는 반출시에 건별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경협업체인 A사의 경우 현재 이와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A사는 포괄승인 품목을 북한으로부터 반입하면서 5·24조치 이전까지 대북송금을 정기적으로 해왔다. 특히 A사는 외국환관리법에 따라 대북송금과 관련해 한국은행의 승인을 받을 때 한국은행 직원과 통일부 직원이 통화를 하도록 해 송금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남북교류협력법과 통일부 고시 위반을 근거로 이 업체 대표를 기소했다. 현재 A사 대표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사법당국은 이 업체가 한국은행의 승인을 받아 송금했기 때문에 외환관리법에는 문제가 없지만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북측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 경협업체 불찰로 책임 회피

B기업도 가벼운 벌금을 받는 것으로 끝났지만 경찰에 불려 다니며 수사를 받는 등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다. 경찰로부터 내사를 받고 여려 차례 전화로 출석요구를 받는 등 시달렸다고 기업 관계자들은 전했다.

C기업은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아냈다, 이 기업의 대표는 경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하며, 처음부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정식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냈고, C기업의 대표는 해당 경찰서에 출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은 대북송금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신문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교역계약서, 대금송금 증명서, 사업자 증명서 등 각종 관련 서류도 제출토록 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통일부는 이 사건과 관련, 경협업체들의 불찰로 돌리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관련 규정(남북교류협력법, 통일부 고시)에 대해 과거의 교역업체들이 규정을 잘 몰랐거나 오인해서 대금결제 방법에 대해서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래서 이러한 사항에 대해서 수사기관들이 수사를 진행하고 일부 업체에 대해서 약식기소 형태로 벌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현금송금이 문제가 되면 대신 현물로라도 북측에 지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업체들의 요구에도 5·24조치 해제 이후에 논의할 얘기라며 답변을 피하고 있다.

경협업체들은 5·24조치의 장기화와 대북송금에 따른 벌금형 부과로 대북사업에서 아예 손을 떼고 있다.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정범진 정책위원장은 “남북경협업체들이 경영 외적인 피해로 인해 대북사업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며 “이런 상태라면 남북의 정치상황이 호전되어도 경협을 하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 2012-06-09 12:24:50수정 : 2012-06-09 12:46:44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기사출처: 경향신문(http://news.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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